[문예 마당] 가끔 쉬어 가라고
아침에 일어나 침상을 정리하다 허리를 끔뻑했다. 일 년이면 한 두어 번 이런 일을 겪어 고생을 톡톡히 하는데 오늘 또 기어이 일을 당하고 말았다. 허리를 다치면 그만 펼 수도 구부릴 수도 없어 그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앞으로 얼마 동안 꼬박 불편하게 지내게 될 것이다. 허리가 부자연스러우니 자연 행동도 굼떠 앉은 자리에서 한 번 일어서려면 보통 때보다 서너 배 시간이 소요된다. 일어섰다고 해도 또 걷기가 쉽지 않아 모든 움직임이 슬로비디오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행동이 느리니 마음도 따라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어차피 빨리빨리 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 마음이 재빠르게 적응을 한 것인지 마음이 느긋해지니 시간 또한 느리게 가고, 생각이라는 것도 해본다. 흔히 몸에 이상이 생기는 이유는 힘이 드니 쉬어 가겠다고 하는 신호다. 이 정직한 고백에 우리는 쉽게 귀 기울이지 않아 상태를 악화시키거나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곤란함으로 내몰리게 된다. 옛말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라는 말이 있듯 미리 단속하면 쉽게 해결이 날 일도 그 시기를 놓치게 되면 큰 낭패를 보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내 허리의 증세도 얼마 전부터 조짐이 있었다. 일어서거나 앉을 때 그 동작의 시작에서 척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주춤했다 다시 곧추세워 일어나곤 했는데. 그런 미세한 증상을 감지하고 있었으면서도 그냥 지나쳤던 이유는 ‘조금 참으면 낫겠지’하는 안이 함이었다. 편안하고 쉽게 생각하는 것, 그것이 함정이었던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도 이런 안이함이 곳곳에 포박하고 있다. 몸에 이상이 생겨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인간관계에도 신호가 있다. 조금만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만 더 따뜻하다면 더 나은 관계로 우리들의 삶은 윤택해질 일이다. 좀처럼 화를 잘 내지 않는 남편은 유독 배고픈 것을 못 참는 사람이다. 하여 배가 고프면 화를 내는데, 예를 들어 “아직 식사 준비 멀었나?”하고 물으면 조금 참을 만한 것이고 “아직 식사 준비 멀었어요?”하고 물으면 이때는 진짜 배가 많이 고픈 것이라 화내기 일보 직전이다. 남편이 화가 났을 때 붙이는 “~요?” 자는 자신의 화를 누구려 보려고 짐짓 느리게 붙여보는 말인데, 이미 나는 그의 신호를 알아챈다. 가끔 내가 먼저 선수를 칠 때도 있다. 그의 표정을 읽고, 아직 식사 준비가 멀었으니 조금만 참아 달라고 하면 남편도 어느 정도 내 신호에 호응한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신호가 말이나 표정, 몸짓으로 표현되어 전달되면 얼마나 좋으랴. 정작 우리가 제때 알아채고 제때 반응해야 하는 신호는 복잡하고 미묘하여 늘 미로 속에서 헤맨다. 예전, 나는 이 미묘하고도 복잡한 신호에 소홀하여 사람을 잃을 뻔한 경험이 있다. 신호를 보내는 사람의 마음을 읽고도 적당한 대응을 못 했었다. 이때도 ‘시간이 지나면 오해가 풀리겠지’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기다리다 일이 커졌다. 그 후 내가 얻은 교훈은 아무리 친한 관계라 해도 즉시, 또는 같은 방법으로 신호를 보냈어야 했다는 것이다. 관계의 오류는 지극히 상대적이므로 우리는 끊임없는 소통으로 관계 유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 이는 이웃이나 친구뿐만 아니라 가장 가깝다고 하는 친인척에게도 소용되는 말이 될 것이다. 혼자서는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누군가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하고 따뜻한 일이겠는가! 아무리 바빠도 신호등을 보고 규율을 지켜야 안전하듯이, 다급하다고 신호를 무시하면 거기에 대응하는 대가가 피눈물 나게 아프다. 이제 또 한 해를 마무리할 때다. 한 해 동안 내게 사랑을 베풀어 주신 분들을 떠올리며 감사의 마음을 가져본다. 또한, 한 해 동안 나로 인해 상처받은 분들은 없었는지 주변을 꼼꼼하게 돌아본다. 이 모든 생각이 움직일 수 없어 가만히 누워서 해보는 생각이다. 얼마나 기막힌 타이밍인가? 만약 허리 통증 없이 그저 온전하게 보내게 되었다면 바쁘다는 핑계로 이 모든 일을 떠올려 보지도 못한 채 그냥 한 해를 보내고 말았을 것이다. 몸이 아플 때는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휴식의 시간이다. 편안해서 함부로 대했던 사람은 없었나? 뒤돌아본다. 분명한 신호를 듣고도 소홀히 대했던 적은 없었나 뒤돌아본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곤란함으로 내몰리기 전, 아주 작은 신호에도 즉각 반응하여 “미안합니다” 하며 손 내밀어 보기로 한다. 가끔 쉬어 가라고… 몸이 아프면 마음이 익어 간다. 고옥 수필가문예 마당 수필 허리 통증 관계 유지 표정 몸짓